살아가기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마술강사 야초 2010. 1. 29. 18:22

리처드 로저스

건축의 최대 도전은 ‘지속가능성’


건축을 통해 일생 큰 기쁨을 누린 나는 무척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내가 건축가로 일한 지난 50년 동안의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프로젝트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건물 디자인에 환경이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한때 우리 건물은 단순한 기하학적 박스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태양빛을 가두고 바람을 좌지우지하고 땅에서 열과 물을, 구름에서 비를 뽑아 오는 등 자연 환경에 훨씬 더 잘 순응하고 있습니다.

 

건축의 미래에서 가장 결정적인 도전은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기후 변화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tipping point)’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교적 간단한 습관의 변화만으로도 파멸의 길에서 돌아설 수 있는데도 우리 문명이 자기 파멸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건축가의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이 논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도시―건물과 이를 구성하는 것들과 이들을 떠받치는 인프라―는 전 세계 에너지의 4분의 3 이상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건축가는 현재보다 에너지 효율이 최소 50퍼센트 높은 건물과 기반시설을 디자인함으로써 이러한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질과 우리 삶의 질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마침 운이 좋아 생기 넘치는 도시에 살며 일용할 양식과 일터를 얻고 멋진 공간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그런 도시에 산다는 자체가 크나큰 기쁨일 것입니다. 불행히도 형편없는 빈민가에서 자라고 가난에 허덕이면서 자기 환경을 개선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삶이 곧 전쟁일 것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집 창 밖으로 나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현관 앞 계단에 쪼그려 앉거나 지붕 밑 테라스에 올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공공장소 어디서든 앉을 수 있는 벤치를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집에서 5분 거리 이내에 아이들이 놀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가장 초보적인 인권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인간을 빚는다


지난 30년 동안 나는 다중심 조밀도시(compact, multi-centered city) 개념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걷기, 자전거 타기, 대중교통이 장려되고, 주거가 일터에서 가깝고, 가난한 자와 부자가 근접거리에 살며, 정의가 모든 개인의 권리인 그런 도시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지난 10년 영국에서 노동당 정부의 도시 전략의 기조를 이루었고, 켄 리빙스톤 전 런던시장의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도시는 인류가 창조한 가장 복잡하고 사회와 밀접한 형태의 조직입니다. 파르테논이 지어질 당시 아테네를 봅시다. 아테네는 참다운 의미에서 문명이 비약적 진보를 이룬 인류 역사의 저 경이로운 시대의 촉매제가 된 도시입니다. 과학이면 과학, 예술이면 예술에서 아테네 정부와 시민들은 참으로 지혜로운 결정들을 내렸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아직도 그들의 결정을 딛고 서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지만, 인간을 빚어 내는 것은 도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는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를 받습니다. 단독주택이든 대도시의 초대형 재개발 프로젝트든, 개요서를 받고 분석에 들어갑니다. 뭔가 반짝 떠오를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니, 진척을 보려면 클라이언트와 매우 긴밀하게 작업해야 합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적어도 나한테는―백지 한 장 달랑 주고 답을 써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약조건들을 놓고 클라이언트들과 밀고 당기는 것이 나는 즐겁습니다. 클라이언트에게 싸움을 걸고, 클라이언트가 걸어 오는 싸움에 응수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일단 디자인팀 전원이 클라이언트와 토론에 들어가게 되면 이른바 아이디어의 ‘핑퐁 게임’이 시작됩니다. 바로 이 지점이 디자인 과정에서 진짜로 즐길 만한 대목입니다. 여기서 아이디어가 창출되고 마침내 건물로 결실을 맺습니다.

 

지금 내가 일하는 팀의 이름은 ‘로저스 스턱 하버 플러스 파트너’입니다. 우리는 ‘투명함’, ‘가벼움’, ‘신축성’, ‘움직임’, ‘공간감’, ‘환경 책임’, ‘민주적’, ‘건설 과정’ 등등 일련의 주축 개념에 근거한 건축 ‘언어’를 개발했습니다. 우리의 건축은 이들 주축 개념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시성을 극대화함으로써 ‘건축 과정’을,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건물 외부에 설치함으로써 ‘움직임’을 형상화합니다. 우리 팀은 이런 언어로 소통합니다. 언어란 인간으로서 우리의 소통 방식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므로, 건축은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됩니다. 물질덩어리 위의 빛과 그림자의 유희입니다. 나는 이 모든 요소들과 미적으로 유희하는 일에 푹 빠져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건축은 사회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나는 도시를 좋아합니다. 도시는 ‘시민’과 불가분하게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건축에서는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입니다. 건축의 형식은 건축이 섬기는 사회에서 나옵니다. 건축 형식이 사회를 빚는 것이 아닙니다.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 - 건축가

1933년 이탈리아 출생. 로저스의 부모는 영국인이다. 런던 건축협회와 예일대 건축대학원에서 배우고 1970~77년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와 일하며 파리 퐁피두센터(1977)를 설계했다. 런던 로이드 빌딩(1984), 스트라스부르 유럽인권재판소(1984), 베를린 다임러 크라이슬러 본사(1999), 런던 그리니치의 밀레니엄 돔(1999), 히스로 제5터미널(2008) 등이 있고, 뉴욕의 신 세계무역센터 3번 타워의 건축가로 선정되었다. 1991년 영국 기사(KBE), 2008년 제국기사단(CHKBE) 입단.